대한민국은 높은 교육열과 빠른 디지털 전환을 기반으로 교육 인프라를 발전시켜 왔지만, 2025년 현재에도 일부 농산어촌, 도서지역, 저소득 밀집 지역 등 교육 소외지역에서는 여전히 양질의 독서교육과 문화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독서는 전 생애에 걸친 평등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핵심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독서 환경, 자료 접근성, 전문가 인력, 지속 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지역 간 격차는 여전히 크다. 본문에서는 독서복지 개념을 중심으로 교육 소외지역의 독서환경 현황을 분석하고, 실제 실행 중인 프로그램과 정책 사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독서복지 전략을 제시한다.

독서복지의 개념과 소외지역의 교육 현실
독서복지란 국민 개개인이 장소, 계층, 연령, 장애 여부 등과 무관하게 책과 독서 문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문화적 기본권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책을 읽을 권리뿐 아니라, 책을 통해 지식, 공감, 자기 성장, 사회 통합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특히 OECD 국가들이 강조하는 포용적 교육의 핵심 기준 중 하나가 ‘문화 복지 접근성’인데, 독서는 그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교육 소외지역은 이러한 독서복지 개념과는 거리가 먼 실정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이나 책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거나, 사서·독서지도사 등 전문 인력이 부재하며, 가정 내에서도 독서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낮은 경우가 많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읍·면 단위 공공도서관 수는 도심지역의 1/3 수준에 불과하며, 독서문화 프로그램 운영 빈도 역시 지역 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소외지역 학생은 디지털 독서 기기나 전자도서에 대한 접근성도 낮아, 전체 교육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 이중 격차를 겪고 있다. 책을 구하기 어렵고, 책을 읽어줄 사람도 없으며,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도 제한된 상태는 곧 독서력 저하, 학습 흥미 감소, 장기적으로는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지역의 청소년들은 독서활동이 진로 탐색, 정서 안정, 사회적 관계 형성 등 전인적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음에도 그러한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독서복지를 단순한 지원을 넘어서, 지역의 교육 여건을 반영한 맞춤형 전략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단발성 캠페인이나 행사 중심이 아닌,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 전문 인력 배치,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운영, 디지털 자원과 연계한 확장 전략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독서복지는 단순한 문화 향유 차원을 넘어 교육 평등 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실행 중인 독서복지 모델과 지역 사례
현재 교육 소외지역에서 시행 중인 독서복지 프로그램은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 단체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는 **‘작은도서관 네트워크 구축 사업’**이다. 이는 지역사회 내 유휴 공간이나 폐교, 마을회관 등을 활용해 마을 단위 독서 공간을 조성하고, 지역 주민과 학생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으로, 2023년 기준 전국 3,500여 곳에 설치되었다. 특히 전라남도 해남군의 사례는 기존 창고를 개조한 ‘책마루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독서모임, 작가 초청 강연, 글쓰기 교실 등을 운영하며, 지역 내 독서문화 확산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농산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찾아가는 독서버스’ 사업은 물리적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모델이다. 이 사업은 독서버스가 주기적으로 학교와 마을을 방문하여, 책 대출 서비스, 독서체험 프로그램, 낭독 공연 등을 제공하며, 독서를 단순한 활동이 아닌 축제처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 운영 사례로 경북 청송군의 이동도서관은 연간 5,000여 명의 이용률을 기록하며, 지역 학교의 정규 수업과도 연계되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비영리단체와 협업하는 모델도 주목할 만하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책으로 여는 마을’ 프로젝트는 교육 소외지역 학교와 협약을 맺고 1년 단위로 독서 프로그램을 파견 운영하는 방식이다. 파견 교사는 독서 수업, 책 읽기 생활화, 주제별 독서토론 등으로 구성된 커리큘럼을 운영하며,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대상 교육도 병행하여 독서에 대한 가족 단위 인식 개선을 도모한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낙후지역 초등학교에서 학습능력 향상과 자아존중감 증진에 실질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디지털 독서복지 플랫폼 확대도 점차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와 국립중앙도서관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책이음 서비스’는 지역 도서관 간 연계 대출 시스템을 강화하고, 전자책과 오디오북 콘텐츠를 무상으로 제공하며, 특히 네트워크 취약 지역에는 태블릿과 전자도서 리더기를 대여해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는 독서복지가 단순한 책 나눔을 넘어서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확보, 문화 참여 확대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독서복지 실현을 위한 정책 제언
독서복지를 단순한 문화 지원 사업이 아닌 교육격차 해소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개선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독서복지를 위한 법적·행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는 문화정책 또는 지역개발사업의 부속으로 독서복지가 포함되어 있으나, 독립적인 독서복지법 또는 조례를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책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예산 확보, 전문 인력 고용, 장기적 사업 운영이 가능해진다.
둘째, 전문 인력의 지역 순환 배치와 협업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교육 소외지역에서는 사서, 독서지도사, 독서문화기획자 등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에 따라 권역별 독서복지 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인력을 지역 순환 파견하거나 온라인 멘토링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또한 학교-지자체-도서관-시민단체가 연계된 독서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구축해, 중복 없이 효율적으로 자원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디지털 독서환경을 기반으로 한 접근성 확대가 중요하다. 교육 소외지역의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디오북, 전자책, 온라인 독서토론 플랫폼 등 디지털 콘텐츠 기반 인프라가 핵심이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모바일 기반 독서교육 콘텐츠, AI 독서 피드백 시스템 등은 학습 동기 유발과 자기주도 학습 강화에 효과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국공립 도서관을 중심으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기기 대여 서비스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학생뿐 아니라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통합 독서복지 전략이 필요하다. 독서교육은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 전반의 독서문화와 직결된다. 따라서 학부모 독서모임, 지역 어르신 대상 낭독 프로그램, 마을 독서 캠페인 등을 통해 세대 통합형 독서 환경을 조성하고, 독서가 ‘가정-학교-지역’을 연결하는 핵심 축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독서는 단절된 교육 접근성을 연결하고, 공동체 문화 회복을 돕는 핵심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의 평가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 독서복지의 효과는 단기적 수치로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도서 이용률, 프로그램 참여도만이 아니라, 학생의 자기표현 변화, 자아존중감, 공동체 소속감 등 정성적 지표를 중심으로 장기적 모니터링과 성과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정책 지속성과 확산에 결정적 근거가 된다.
교육 소외지역의 독서복지 실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독서는 모든 학습의 출발점이며, 책을 통한 문화 향유는 국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할 기본권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많은 지역에서 물리적, 제도적, 인식적 한계로 인해 독서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역, 학교와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하여 지속 가능하고 통합적인 독서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발성 지원이 아닌 장기적 전략, 물자 지원을 넘는 인적·문화적 투자, 일방적 제공이 아닌 지역 참여형 설계가 필요하다. 독서는 단지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는 힘이다. 그 힘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