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단지 활자를 눈으로 읽는 행위를 넘어, 도시와 공간, 문화와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진 경험입니다.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책에 대한 접근성, 사람들의 독서 친화적 태도는 모두 우리가 책과 얼마나 잘 만날 수 있는지를 좌우합니다. 어떤 도시는 대형 도서관으로, 어떤 도시는 골목 서점으로, 또 어떤 도시는 자연과 함께 책을 읽는 방식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키워줍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 독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한 번쯤 책을 읽어보고 싶은 도시’로 자주 언급되는 전 세계 다섯 도시를 선정해, 각 도시의 독서 인프라, 문화적 특징, 공간 활용 방식 등을 비교하며 소개합니다.

서울, 일상 속에 책을 심은 도시
서울은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 속에 독서를 위한 깊고 조용한 공간들이 잘 숨겨져 있는 도시입니다. 수도로서 문화 인프라가 풍부할 뿐 아니라, 시가 주도하는 독서문화 확산 정책이 잘 갖춰져 있어 시민들의 책 접근성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도서관은 서울시청 본관을 개조해 만든 역사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공공 도서관입니다. 이곳은 도심 중심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자주 찾는 명소입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은 학술 자료부터 일반 교양서까지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됩니다. 한강 주변이나 공원 인근의 작은 구립 도서관들 역시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독서를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서울은 도서관뿐 아니라 대형 서점의 수준도 상당히 높습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영풍문고 종각점, 반디앤루니스 등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열람이 가능한 문화 공간으로 확장되어 있으며, 곳곳에 독립서점들도 활발히 운영 중입니다. 성수동, 연남동, 망원동 등 MZ세대가 자주 찾는 지역에서는 독립 출판물이 중심이 된 북카페와 책방들이 ‘읽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의 독서 인프라는 ‘접근성과 다양성’에서 강점을 보입니다.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한 거리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고, 매년 ‘서울국제도서전’,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같은 캠페인을 통해 책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줄이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서울은 책을 읽는 일이 고립되지 않도록 도시 전체가 이를 조율하고 있는 드문 대도시라는 점입니다.
코펜하겐, 도서관이 삶을 품는 북유럽 모델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독서 친화적인 도시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곳에서는 도서관이 단순한 책의 저장소가 아니라, 시민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시설은 오르후스에 위치한 ‘Dokk1(독엔)’ 도서관으로, 유럽 최대 규모의 공공도서관입니다. 이 공간은 미디어센터, 가족 놀이방, 회의실, 시민 서비스 센터까지 포함되어 있어 ‘도시 공공서비스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시내에는 각 지역별로 중소형 도서관이 밀집되어 있으며, 이들 도서관은 각기 특화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이 문해 교육에 집중한 키즈 라이브러리, 청소년 창작 공간, 고령층을 위한 느린 독서방 등이 그 예입니다. 도서관의 물리적 공간 구성도 매우 유연합니다. 대부분 개방형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자연광이 풍부하고, 나무 소재와 패브릭이 주는 따뜻한 질감이 독서를 더욱 편안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도서관들을 중심으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됩니다. 매주 열리는 커뮤니티 북클럽, 로컬 작가와의 만남, 다양한 언어의 낭독회는 이 도시에 살지 않아도 책을 통해 누구나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도서관 내에서 책을 읽지 않더라도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독서는 목적이 아니라 흐름이며, 코펜하겐은 이를 도시 차원에서 완벽히 수용하고 있는 대표 사례입니다.
포틀랜드, 골목마다 책이 흐르는 도시
미국 오리건주의 포틀랜드는 ‘책과 예술의 도시’로 불리며, 미국 내에서 가장 활발한 독립출판과 서점 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중심에는 ‘파월스 북스(Powell’s Books)’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서점이 있습니다. 약 3천 평 규모에 100만 권 이상의 책을 보유한 이 서점은 하나의 서점이라기보다는 복합 문화 공간에 가깝습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낭독회나 북토크, 작가 강연이 열리며, 카페·전시공간·중고서점이 모두 통합되어 있어 독서 애호가들의 ‘성지’라 불릴 만큼 상징성이 큽니다.
포틀랜드는 또한 지역 사회 내에서 책을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도시입니다.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로 불리는 소형 나눔서가가 주택가와 공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누구든 책을 놓고,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독서 장려를 넘어서, 책을 매개로 한 지역 공동체 형성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포틀랜드는 서점과 카페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특정 주제에 특화된 소형 서점도 많은데, 예를 들어 환경문제, 사회운동, 퀴어문학 등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독립서점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이 도시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이며 사회적인 행위로 자리잡고 있는 셈입니다.
포틀랜드는 출판, 유통, 큐레이션, 공간, 커뮤니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책으로 살아가는 도시’라는 개념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독서가 고립된 활동이 아닌, 사회적 경험이라는 것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교토, 조용한 풍경 속에서 책을 만나는 법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는 사찰과 전통 골목, 자연이 어우러진 서정적인 분위기 덕분에 사색과 독서에 최적화된 도시로 손꼽힙니다. 관광지로 알려진 이 도시가 사실은 일본 내에서도 독립출판과 서점 문화가 특히 활발한 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은 의외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공간은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카페·예술전시·독립출판 서가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지역 예술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골목에 자리한 이곳에서 책을 펼치고 하루를 보내는 일은 교토만의 정서가 잘 드러나는 독서 경험이 됩니다.
교토에는 전통을 살린 도서관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교토국제만화뮤지엄은 만화책 전문 도서관이자 체험형 공간으로, 일본 만화와 서브컬처를 이해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한 사찰 근처에는 작은 서재 카페가 많아, 명상이나 차문화와 함께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교토의 독서 매력은 ‘속도감 없는 시간’에 있습니다.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분위기와 조용한 거리,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책장이 넘겨지는 속도마저 특별해지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교토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내면과 깊이 만나는 도구가 된다는 점을 공간적으로 증명해주는 도시입니다.
헬싱키, 공공 디자인이 독서를 품은 도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책을 중심에 둔 도시 디자인’의 선도 사례입니다. 2018년 개관한 오디 도서관(Oodi Library)은 단순히 도서 대출 공간을 넘어서 디지털 창작 공간, 가족 활동 공간, 음악 스튜디오, VR 체험실 등 복합 기능을 갖춘 공공 혁신 공간입니다.
오디는 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으며, 내부는 나무, 유리, 곡선 구조를 활용한 따뜻한 분위기 덕분에 누구나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 창가 하나까지 사람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어디서든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입니다.
헬싱키 시민들은 도서관을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으로 사용합니다.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을 켜는 곳이 모두 도서관일 수 있으며, 이러한 열린 태도는 책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획기적으로 좁혀줍니다.
무엇보다 오디는 ‘책을 읽지 않아도 환영받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독서를 강요하지 않으며, 그저 책과 사람이 공존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헬싱키는 이처럼 독서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 아닌, 일상을 통해 독서를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도시입니다.
책은 어느 장소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어느 도시에서 읽느냐에 따라 그 울림은 전혀 다릅니다.
서울의 실용성과 다양성, 코펜하겐의 시스템과 개방성, 포틀랜드의 공동체적 감성, 교토의 사색적 분위기, 헬싱키의 공공 디자인—이 도시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책을 ‘생활’로 만들어냅니다.
이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사는 삶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당신이 다음 독서를 계획하고 있다면, 그 장소가 어디인지도 꼭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도시는 책을 더 깊이 있게, 더 오래 기억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