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교육 현장은 본격적인 디지털 교과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대부분의 교과서가 디지털로 전환되었고, 학생들은 태블릿이나 전자기기를 이용해 수업을 듣고, 과제를 수행하며, 시험도 온라인 기반으로 치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교육부는 ‘맞춤형 학습’과 ‘디지털 역량 강화’를 목표로 디지털 교과서의 전면 도입을 추진했으며, 이는 빠른 정보 접근성과 학습 효율 향상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교육이 빠르게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교육 현장에서 그 의미를 지켜가고 있는 것이 바로 ‘종이책’이다. 종이책은 단순히 과거의 매체가 아니라, 여전히 인간 중심의 학습에서 중요한 정서적·인지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으며, 디지털 교과서가 해결하지 못하는 ‘깊이 있는 사고’와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본문에서는 디지털 교과서 시대가 본격화된 2025년, 왜 여전히 종이책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론적 배경과 실제 교육 현장의 사례를 바탕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과 교육의 전환
디지털 교과서의 보급은 단순한 매체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을 상징한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전국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주요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했으며, 이는 학습 자료의 상호작용성, 시청각 자료 통합, AI 기반 맞춤형 피드백 시스템 등 다양한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학생들은 태블릿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학습 내용을 반복하거나 확장할 수 있으며, 교사는 실시간으로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학습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수업이 급속히 확산되며, 디지털 기기의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도 교육의 필연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편의성과 효율성에 집중된 반면, 인간의 인지적 구조와 학습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의 여지가 많다. 대표적인 우려는 정보의 ‘속도’가 사고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화면 기반의 텍스트는 페이지 구성이 연속적이고 시각적 맥락이 약하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내용의 구조를 파악하고 기억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마가렛 제킨스 박사의 연구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그녀는 디지털 화면으로 책을 읽은 실험 참가자들이 종이책을 읽은 그룹에 비해 줄거리 이해, 사건의 흐름 파악, 정보 회상 측면에서 일관되게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페이지의 물리적 위치를 기억하는 공간 인지 능력 역시 종이책을 읽을 때 더 효과적으로 발달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는 특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처럼 학습의 기초적 습관을 형성하는 시기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차이점은 학습 몰입과 집중력에서도 드러난다. 태블릿이나 스마트기기는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고 있어 다중 작업이 가능하지만, 이로 인해 학습 도중 주의가 분산되기 쉽고, 장시간 학습에 필요한 몰입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제 서울의 H고등학교에서는 국어 지문을 종이책과 태블릿 두 가지 방식으로 제공하고, 학생들의 독해 정확도와 내용 이해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실시했는데, 종이책을 사용한 학생들의 결과가 확연히 높았으며, 대부분의 학생이 “종이책을 읽을 때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지 매체의 차이만이 아니라, ‘학습 환경’과 ‘학습 습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즉, 종이책은 화면의 방해 요소 없이 텍스트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이는 사고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종이책의 인지적·정서적 교육 효과
종이책의 가치는 단순히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인지 구조와 정서 발달에 맞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비고츠키의 사회문화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적 자극을 통해 발달한다. 종이책은 바로 이 언어적 자극을 제공하며, 동시에 독립적인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도구다. 특히 문학 텍스트나 서사 중심의 책을 읽을 때, 독자는 텍스트의 흐름을 따라가며 감정이입, 인물의 의도 해석, 사건 전개 예측 등의 복잡한 인지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고차원적 사고의 일환이며, 종이책은 그러한 몰입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적합한 도구로 작용한다.
또한 종이책은 읽는 속도와 정보 흡수의 리듬을 학습자가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디지털 콘텐츠는 빠른 소비에 익숙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집중력을 단기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종이책은 사용자가 읽기 속도, 페이지 넘김, 밑줄 긋기, 메모 등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내용과의 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율성은 학습자가 텍스트와 심리적으로 연결되고, 내용에 대한 소유감을 느끼게 하며, 이는 학습 동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미국 교육심리학회는 종이책 독서 경험이 풍부한 학생일수록 자기주도 학습 역량과 장기적 문제 해결 능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서적 안정감 역시 종이책의 주요 가치 중 하나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종이책은 일정한 속도와 정적인 분위기를 제공하며, 이는 학습자에게 집중과 이완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안전지대를 제공한다. 특히 아동 및 청소년기에는 이러한 환경이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관리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전남의 한 중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종이책을 15분씩 읽는 ‘슬로우 리딩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참여 학생 대부분이 수업 집중도가 향상되었으며, 교사들은 “학생들의 감정 기복이 줄고, 교실 분위기가 차분해졌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종이책이 단지 학습 수단을 넘어서 정서적 안정과 학습 태도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현장 적용 사례와 혼합형 학습의 가능성
현장에서는 종이책과 디지털 교과서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학습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두 매체의 장점을 결합하여 학생들이 상황과 목적에 따라 가장 적합한 학습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경기도의 G고등학교에서는 수학 개념 학습에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하고, 관련 개념이 담긴 도서를 종이책으로 제공하여 학생이 실생활 맥락에서 해당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사고하게 한다. 예를 들어 확률 단원을 학습한 후 『게임 이론으로 보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고, 실제 사회 현상과 연결 지어 글을 쓰는 활동이 그것이다. 이처럼 종이책은 단순 반복이 아닌, 학습을 맥락 속에 배치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또한 서울 Y중학교는 주 1회 ‘종이책만 사용하는 날’을 지정하여, 전 교과 수업에서 인쇄물과 책만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해당 수업 시간 동안 디지털 기기 없이 손으로 필기하고, 책을 중심으로 토론하며, 활동 결과를 직접 작성한다. 교사들은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질문의 질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이 같은 수업 방식은 단순히 ‘옛 방식’의 복귀가 아니라, 다양한 학습 도구를 유연하게 조합하여 학생의 사고를 다각도로 자극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종이책은 지금도 충분히 현대적 교육 환경 속에서 살아 있는 교육 도구이며, 기술 발전과 상충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보완하는 방식으로 교육 현장에 통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입시 측면에서도 종이책은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대입 전형에서 자기소개서, 면접, 논술 등 서술형 평가 요소의 중요성이 유지되고 있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독서와 사고, 그리고 논리적 글쓰기 훈련이 필수적이다. 서울의 K고등학교는 고등학생 대상 ‘독서 기반 논술 클리닉’을 운영하며,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과 논술 작성을 반복하는 커리큘럼을 진행 중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실제 대입 전형에서 우수한 결과를 얻었으며, 지도 교사는 “종이책을 읽고 직접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놀라운 사고의 성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례는 종이책이 단순한 전통의 상징이 아닌,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사고 훈련 도구임을 보여준다.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은 시대적 흐름이며, 효율적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교육의 진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인지적 특성과 학습의 본질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종이책은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며, 깊이 있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유한 장치를 제공한다. 특히 디지털 중심 교육이 가속화될수록, 그 속도에서 벗어나 사유하고 내면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종이책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이며, 사람은 깊이 읽고, 천천히 생각하고, 스스로 표현할 때 비로소 자라난다. 디지털과 종이는 경쟁이 아니라 조화의 관계에 있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빠른 학습과 깊은 이해가 공존하는 체계이며, 그 중심에서 종이책은 여전히 살아 있는 교육의 본질을 지켜주는 조용한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