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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읽을까-유럽 독서 문화와 유럽식 독서 태도

by 트립트랩 2025. 10. 8.

유럽은 오랜 역사와 철학, 예술이 깊이 뿌리내린 대륙이다. 책과 활자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며, 독서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문화권으로 평가받는다. 도서관이 일상 공간으로 자리하고, 서점은 마을의 중심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며, 독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대화의 매개체가 된다. 그렇다면 유럽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유럽 각국의 독서 문화와 책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읽기의 방식’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유럽 독서 관련 사진

도서관은 생활 공간, 책은 삶의 일부분

유럽의 독서 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바로 ‘도서관의 일상화’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오래전부터 도서관을 교육과 문화의 중심으로 삼아왔다. 북유럽의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은 인구 대비 도서관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공공 도서관이 지역 공동체를 위한 거점 역할을 한다. 이들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고품질의 공공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책과 지식을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핀란드 헬싱키의 오디 도서관은 그 대표적인 예다.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라 카페, 스튜디오, 디지털 제작실, 공연장이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시민들은 여기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상 편집을 하며, 다양한 창작활동을 한다. 즉, 도서관은 단순한 ‘도서 보관소’가 아닌 ‘생활 속 문화공간’으로 기능한다. 이런 환경 덕분에 유럽에서는 책이 공부의 도구가 아닌, ‘즐거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유럽의 공공 도서관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 습관을 자연스럽게 길러주는 교육 시스템과 연계되어 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독서 행사, 청소년 대상의 북클럽 등 연령별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이는 책과 친숙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독서가 부담이 아닌 일상 속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다.

반면 한국은 도서관 인프라가 양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공부하는 공간’ 혹은 ‘시험 준비 장소’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유럽처럼 도서관이 삶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매개로 한 문화와 공동체 활동이 함께 이루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유럽의 도서관이 단지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방식은 한국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서점과 독립출판, 읽기의 다양성을 담다

유럽의 서점 문화는 ‘책을 파는 공간’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영국 런던의 워터스톤스, 독일 베를린의 도서 전문 서점들은 책과 사람, 커피와 대화가 어우러지는 문화 공간으로 유명하다. 유럽 서점은 규모나 매출보다 그 지역의 독서 취향, 문화 색채를 담아내는 데 초점을 둔다.

특히 독립서점의 존재감이 크다. 프랑스는 ‘책 가격 고정제’를 통해 대형 서점과 독립서점의 경쟁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출판물이 유통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제도 덕분에 신간뿐 아니라 오래된 고전, 실험적 문학,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책들도 고르게 독자의 선택을 받는다. 출판 시장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독서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기반이 되는 셈이다.

또한 유럽은 독립출판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어, 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구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보다 폭넓은 시각과 다양한 주제를 접할 수 있으며, 독서는 특정한 형식에 갇히지 않고 창의적인 활동으로 확장된다. 서점 안에는 저자와의 만남, 독서토론, 글쓰기 워크숍 등이 자주 열리며, 이 모든 활동은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소통하고 연대하는 문화를 형성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독립서점의 수가 늘고, 북페어나 책방 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형서점 중심의 유통 구조와 베스트셀러 위주의 소비 성향은 문제로 지적된다. 유럽식 서점 문화는 단지 책을 읽는 방식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독서가 개인의 내면 활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교류로 이어지는 경험이 유럽 전역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느리게, 깊게, 자유롭게 읽는 유럽식 독서 태도

유럽의 독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대하는 태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유럽 사람들은 책을 하나의 ‘작품’이자 ‘삶의 일부’로 여긴다. 독서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활동이며, 속도보다 깊이에 집중한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독서를 조급하게 하지 않는다. ‘얼마나 빨리 읽었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곱씹었는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도 드러난다. 독서 평가가 단순히 줄거리 요약이나 감상문 작성이 아니라, 토론과 질문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책을 읽고, 의문을 품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 독서는 지식을 쌓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유럽의 독서 교육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해석과 감정을 존중하며, 책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한 유럽 사람들은 장소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읽는다. 공원 벤치, 기차 안, 호숫가, 해변, 심지어 숲속에서도 책을 펼치는 풍경은 일상적이다. 책은 휴식과 사색, 때로는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유럽식 독서 태도는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내면을 돌아보는 소중한 행위로 여겨진다. 이는 곧 독서의 지속성과 깊이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독서를 ‘공부’나 ‘자기계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는 교육열과 경쟁 중심 사회라는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독서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읽기의 의미’에 대한 인식부터 변화할 필요가 있다. 유럽처럼 책을 통해 쉼을 얻고, 생각을 키우며, 자신의 속도로 독서를 이어가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한국에서도 독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책을 삶에 들이는 유럽의 지혜

유럽의 독서 문화는 단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는지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도서관을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서점을 소통의 장소로 만들며, 독서를 자기표현과 대화의 수단으로 삼는 그들의 방식은, 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진짜 지혜를 보여준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나를 돌아보며,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여전히 유효하다. 유럽 사람들의 독서 습관과 문화는 단지 모방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독서 생태계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삶을 조금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유럽처럼 책을 곁에 두고, 천천히 읽고, 자주 나누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