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일상과 교육 전반을 지배하는 2025년, 인간이 인간답게 사고하고 소통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 단순 정보 습득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 사고, 맥락 이해, 가치 판단, 창의적 통합은 오히려 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독서력’이다. 독서는 단지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사고를 촉진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며, 타인의 관점과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인지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교육이 AI 시대를 맞아 직면하고 있는 본질적 질문 —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역량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결국 독서라는 활동 속에서 찾아야 한다. 본문에서는 2025년 한국 교육과 사회 구조 속에서 독서력이 왜 필수 역량이 되었는지를 이론과 정책, 그리고 현장의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탐구한다.

AI 이후의 인간 교육, 왜 독서인가
2025년 현재,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학습 파트너, 평가자, 조언자로 교육 현장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교사는 AI 기반 학습 분석 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 수준을 진단하고,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며, 피드백 역시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대형 언어 모델을 활용한 디지털 튜터 시스템은 학생이 질문하면 실시간으로 관련 자료를 요약하고 문제를 제공하며, 심지어 첨삭까지 제공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학습의 효율성과 속도를 높이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그만큼 인간 교사와 학습자 사이의 상호작용, 개별 사고의 과정, 비판적 판단 등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서의 가치는 더욱 명확해진다. AI는 정보를 빠르게 분류하고 통합할 수 있지만, 읽는 자가 어떤 관점으로 해석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론할 것인지까지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독서를 통해 언어의 맥락과 감정을 파악하며, 비슷한 정보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추출해낸다. 이는 AI가 가장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이며, 동시에 미래 인간 역량의 핵심이다. 예컨대, 같은 기사나 텍스트를 읽더라도 인간은 시대적 배경, 문화적 코드, 윤리적 가치 등을 고려해 해석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사고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깊이 읽는 힘’, 즉 독서력이다.
이론적으로도 독서력은 인지 발달과 직결된 요소다. 브루너는 인간의 인지 구조가 내러티브와 논리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으며, 그중 내러티브 사고는 독서를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강화된다. 내러티브는 사건, 맥락, 감정, 의도를 동시에 다루는 사고 구조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고 복잡한 관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한 문제 해결 능력이나 계산 능력과는 차원이 다른 인지 처리 방식이며, AI가 ‘정답’을 찾는 데 집중하는 동안, 인간은 독서를 통해 ‘질문’을 만들어낸다. 교육이 단순히 정답을 가르치는 시대를 넘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요구하는 이 시점에서 독서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재정의된다.
교육 정책 역시 이러한 방향성과 일치하고 있다. 2025년 교육부가 발표한 ‘AI 기반 학습 혁신 방안’에서는 디지털 학습 환경 속 인간 고유 역량 강화를 위한 전략 중 하나로 ‘고도화된 독서 교육 체계’를 명시하고 있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초·중등 교육 전 과정에 걸쳐 독서 기반 사고력 수업을 강화하고, AI 도구와 병행할 수 있는 ‘디지털 독서 큐레이션 플랫폼’을 구축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대학입시 제도 역시 이런 흐름을 반영해 수능 국어영역에서 추론형 독서 문항 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며,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독서 활동 이력이 평가의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현장의 변화와 독서 교육의 실제 사례
이러한 정책적 방향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빠르게 실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울의 H고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AI+독서 융합 수업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 학기 동안 학생이 스스로 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AI 도구를 활용해 관련 문서를 수집하고 요약한 후, 주제와 관련된 도서를 직접 읽고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단편적이고 표준화된 반면, 책은 서사와 맥락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 중 다수는 책을 읽은 후 보고서의 주제 방향을 바꾸거나, 추가적인 철학적 질문을 설정하는 등의 ‘사고의 확장’ 현상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대전의 M중학교는 전 학년이 참여하는 ‘매일 30분 독서 수업’을 운영 중이다. 이 수업은 학급별로 정해진 시간에 학생이 자율적으로 책을 선택하여 읽고, 간단한 질문에 대해 AI 노트 앱에 메모하는 방식이다. 이후 교사는 이 메모를 바탕으로 소그룹 토론을 유도하고, 학생들의 사고 흐름을 시각화하여 피드백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 사고를 조직화하고 타인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일련의 과정이 학습의 핵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학교의 사례는 ‘읽기’를 넘어서 ‘사고를 설계하는 학습’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독서 교육의 혁신은 사교육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대형 입시 학원이나 논술 전문 기관들도 이제는 독서 기반 수업을 본격 도입하고 있으며, 단순한 논술 훈련이 아닌 ‘심화 독서 과정’을 통해 사고 틀 자체를 넓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인문학 고전을 읽고 사회 이슈와 연결하는 수업, 과학 기술서를 읽고 미래 직업 변화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활동 등은 학생들에게 ‘읽고 쓰는 것’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곧 ‘AI와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실천이기도 하다.
AI가 모든 정보를 요약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점점 더 ‘정제된 사고’를 요구받는다. 그 사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독서다. 독서는 느리고 복잡하며 때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속에서 인간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감각을 발달시킨다.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모순된 정보를 조정하며, 기존에 없던 시각으로 새로운 문제를 재구성하는 능력은 오직 독서력에서 비롯된다. 한국 교육이 AI 시대에 진입하며 독서 교육을 다시 중심에 놓는 이유는 단순한 학습 전략이 아니라, 인간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다.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 인간만의 사고 방식, 인간만의 언어 구조, 인간만의 성찰을 이어가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검증된 방법은 결국 ‘읽는 것’이다. 독서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역량이다.